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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수지 작가의 경계 3부작 그림책 (파도야 놀자 / 그림자 놀이 / 거울 속으로)

이수지 작가의 경계 3부작 그림책 (파도야 놀자 / 그림자놀이 / 거울 속으로)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드레센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 여성 작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이수지'. 역대 수상자인 '모리스 샌닥, 토베 얀손, 앤서니 브라운 등' 그림책 분야에서 이름 날리는(날렸던) 위대한 작가들과 같은 상을 수상하면서 아동 문학계의 최고 권위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수지 작가의 작품을 즐겨 보고, 아이들을 지도하며 애용해 왔던 나는 그녀가 2022년, 안드레센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선』,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 속으로』, 『움직이는 ㄱㄴㄷ』, 『동물원』이 있다. 

그녀의 그림책들을 읽다 보면 글이 없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글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독자들은 그림만 가지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한 페이지를 보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수십 개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고, 같은 책을 시간이 흘러서 보았을 때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의 그림책이 매력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책 자체를 신선한 놀잇감처럼 여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림책의 물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그림책 작업을 시도했다. 그림책의 판형을 다르게 하거나(가로로 길게 또는 세로로 길게.. 이수지 작가의 『물이 되는 꿈』은 책의 가로길이가 무려 5.7m에 달한다.), 책이 제본되는 경계선을 이야기의 일부로 활용하기도 한다.

물이 되는 꿈(글: 루시드 폴, 그림: 이수지) / 청어람

아래 사진 속 그림책들은 이수지 작가가 책의 제본면이야기 속 공간의 경계로 활용한 대표적인 '경계 3부작' 작품들이다.

경계 3부작

『파도야 놀자』에서 책의 제본선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된다. 동시에 아이와 바다 사이의 경계 나타내기도 한다. 

파도야 놀자1
아이는 제본면을 사이에 두고 파도를 바라보기만 한다. 차마 파도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파도야 놀자2
아이가 용기를 내어 파도의 영역에 손을 내밀어 본다.

아이의 도발(?)로 자신의 영역을 내어 주게 된 파도! 이후 아이와 파도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그림자놀이』에서 책의 제본선은 사물과 그림자 사이의 경계가 된다. 동시에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그림자놀이

아이가 창고에 들어서서 불을 켜는 순간, 창고 안 물건들의 그림자가 아래쪽 면에 생기게 된다. 아이가 만든 그림자들은 경계선 아래쪽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창고에 있던 물건들이 아이의 상상 세계에선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거울 속으로』에서 책의 제본선은 거울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을 한다.

거울 속으로

주인공은 가운데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하던 '또 다른 나'는 어느새 '온전한 나'로 인식되고, 어느 순간 '내가 내가 아닌 듯한' 생각이 불쑥 찾아온다.

거울 속으로 2

결국 나를 거부하는 나.. 책 속의 소녀는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을까? 

 

아동 독자를 대상으로 글 없는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수지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아이와 함께 눈이 가는 대로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글 없는 그림책은 외국에서는 “silent book”이라고도 하던데, 사실은 매우 시끄러운 책이에요. 아이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느라 바쁘거든요. 아이와의 대화로 가득 차게 해 주세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지요. 책 한 권으로 2분 동안 읽을 수도 있고 20분 동안 읽을 수도 있어요. 20초밖에 안 걸렸다고요? 그것도 좋아요. 아이는 궁금해져서 다시 책으로 돌아올 거예요. 글 없는 그림책은 글이 콕 집어주지 않기 때문에 열려 있고, 정답이란 것도 없어요.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새롭게 시작될 이야기를 기대해요. 매번 다른 이야기가 발견될 것이고, 매번 다른 그림이 보일 거예요.

-2017년, 채널 예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글 없는 그림책을 읽을 때에는 '읽어 준다.'라고 생각하기보단,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