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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

오르세미술관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는 마네, 구스타브 쿠르베, 밀레, 고갱, 고흐 등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학창 시절, 미술 교과 시간에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던 유명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욱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1.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기'와 '만종'

왼쪽이 '이삭줍기' 오른쪽이 '만종' (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우리 농촌의 모습과 흡사하여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그림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농민 화가라고 불리던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서 농촌의 모습, 즉 노동 중인 농민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밀레 그림의 특징은 전체 그림에서 하늘보다 땅이 더욱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농민, 농사, 노동에 대한 신성함과 존경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2. 빈센트 반 고흐 '낮잠'

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그가 밀레의 작품에 대해 얼마나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밀레의 그림은 언제든지 다시 그리고 싶은 그림이야. (중략)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모습,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한낮'을 모사한 작품이다. 고흐 특유의 붓 터치와 색감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림 속 인물이 누워 있는 자세와 풍경, 사물들은 모두 동일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고흐의 마지막 작품 시기에 그려졌는데, 그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매달렸다고 한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편안하게 쉬지 못한 고흐의 절실함이 이면에 보이는 그림이다.

3. 구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구스타브 쿠르베는 밀레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왜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미화시키는가?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쿠르베는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르낭의 매장'은 극빈층 남성의 장례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고통스러운 가난을 겪고 있던 농촌에서 죽음은 그리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장례를 치르는 성직자와 사람들의 표정도 크게 슬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고인이 기르던 개마저도 다른 곳을 쳐다보며 무관심한 모습이다. 고귀해야 할 죽음을 '개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는 죽음'으로 표현해 버린 것이다.

 

4. 구스타브 쿠르베 '화가의 아틀리에'

이 작품은 쿠르베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한 작품이다. 정식 제목은 '화가의 아틀리에, 나의 7년에 걸친 예술 생활을 요약하는 사실적 알레고리'이다. 그의 예술 생활 요약본인 이 작품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화면 중앙에는 쿠르베가 풍경화를 그리고 있고, 화가 곁에는 나체의 모델과 어린 소년이 서 있다. 여기서 모델은 '영감'을, 어린 소년은 '순수'를 의미한다. 영감과 순수는 예술가라면 갖춰야 할 2가지 필수 요소이다.

쿠르베의 오른쪽에 위치한 상류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쿠르베의 친구들, 쿠르베를 후원하는 사람들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 중 검은색 정장 차림에 신사 모자를 쓴 사람은 부르주아로,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서 살이 오른 모습이다. 옆에 놓인 신문에는 당시 나폴레옹 3세를 찬양하고 옹호한 언론사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 위에 놓인 해골은 언론인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작품 속의 충성을 상징하는데, 한 마리는 화가를 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자신이 나폴레옹의 조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제정을 선포한 인물이다. 영광의 시대를 재현한다는 환상을 얘기하며 무려 20년 가까이 프랑스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 프랑스는 사치와 향락의 문화로 점철되어 있었다. 

작품 속의 개 두 마리는 프랑스의 당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올바른 방향(쿠르베와 오른쪽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프랑스를 멈춰 세운 채 망치고 있는 한심하고 무능력한 독재자..

마지막으로 쿠르베를 다시 보면, 쿠르베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황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듯하다. "제대로 좀 하지 못해?"라며 다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폴레옹 3세는 이 그림을 보고 잘 그린 그림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쿠르베는 얼마나 통쾌했을까? 

 

5. 애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마네의 이 그림은 출품될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어 폭발적인 반응에 휩싸였다. 글 좀 쓴다는 평론가들은 그림에 대한 악평을 써서 신문에 실었다. 주된 이유는 바로 외설적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의 남성들은 직업여성들과 함께 숲 속 풀밭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그림 속에서 뒹굴고 있는 빈 술병과 몸을 씻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 소풍의 목적을 알 수 있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 고귀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저속한 내면을 가진 그들의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6.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사진 출처: Martin Beek (Flickr)

당시 아카데믹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한 명의 남성이 많은 여성들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데, 학식과 부유함을 자랑하며 남성이 가이드를 하면 함께 간 여성들은 그림보다는 상류층으로의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남성을 유혹했다. 당시의 미술관은 그러한 욕구가 표출되는 장소일 뿐이었다.

그림 속 여인의 머리에 꽂혀 있는 꽃은 성기를 상징하며, 신발은 여인이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는 걸 의미한다. 여인의 눈빛은 관람객을 향하며 유혹하는 듯하다. 그림 오른쪽에 있는 검정고양이는 프랑스어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은어로도 통한다. 하필 이 고양이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는데, 이는 발기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네는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하면서 다시 한번 비평가들의 가식과 위선을 조롱했다.

 

7.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카미유 동시외는 클로드 모네의 첫사랑이자 첫 번째 부인이다. 부유했던 모네와 달리 카미유는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었고, 혼인을 반대했던 모네의 부모는 그들을 위한 금전적 지원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카미유는 모네를 위해 작품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고 비싼 유화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힘들게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둘째를 낳으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까미유의 장례식에서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림이라도 그리겠다며 붓을 들었는데, 그때 제작된 그림이 바로 '임종을 맞은 까미유'였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는 모네의 사인과 함께 하트가 그려져 있다. 먼저 죽은 아내에게 전하는 모네의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모네는 한동안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했다. 모네의 그림 중 양산을 쓴 여인을 그린 그림이 3점 있는데, 1875년에 그린 '양산을 쓴 여인'은 카미유와 아들 장을 그린 것이고 나머지 두 점은 1886년에 의붓딸 수잔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수잔의 얼굴이 형태 없이 흐릿한데, 이는 카미유가 떠올라 그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8. 오귀스트 르누아르 '도시에서의 춤', '시골에서의 춤'

왼쪽이 '도시에서의 춤', 오른쪽이 '시골에서의 춤' (사진 출처: 그림읽는시간의 Facebook)

모네와 르누아르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두 화가 모두 일반인들의 여유로운 일상과 자연 풍경을 즐겨 그렸다.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도시에서의 춤'과 '시골에서의 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도시에서의 춤'이 먼저 제작된 것이다. 작품 속 여성 모델은 수잔 빌라동인데 왈츠 분위기의 느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우아한 모습이 담겨 있다. '시골에서의 춤'은 르누아르의 부인 알린 샤리고가 자신도 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하여 그린 것이다. '도시에서의 춤'보다 더욱 자유롭고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렇듯 르누아르는 밝은 분위기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는 훗날 관절이 망가져서 붓을 잡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손에 붓을 묶어서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그림을 그려야 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고통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마도 르누아르의 가치관과 열정이 감상하는 우리들에게까지 오롯이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루브르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작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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