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특별전 관람 후기 at CXC 아트뮤지엄
우리 일상에 감성 인테리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앙리 마티스에 대해선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가 남긴 작품은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인테리어용 액자나 패브릭 포스터에 활용되면서 공간에 감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년~1954년)는 프랑스의 화가로 강렬한 색채와 형태를 선보이는 야수파(포비즘)의 창시자다. 그는 말년에 관절염과 십이지장암에 시달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만 했는데, 그 당시에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손가락으로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손에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으며 이것조차 쉽지 않게 되자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오려 붙이는 '컷-아웃(Cut-Outs)' 기법을 시도하였다.
CXC 아트 뮤지엄에서 선보이는 이번 앙리 마티스 특별전은 마티스의 후기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전시로, 그가 남긴 드로잉과 아트북, 포스터, 판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931923
전시가 열리는 CXC 아트뮤지엄은 건대 스타시티 건물 3층에 위치해 있다. 스타시티는 건대 롯데백화점 2층과 연결되는데, 롯데시네마로 향하는 2층 연결통로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CXC 아트뮤지엄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앙리 마티스가 즐겨 사용한 푸른 색상의 전시장 입구가 보인다. 겉보기에 전시장이 매우 좁아 보여서 '볼 게 별로 없는 거 아냐?'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Section 1. 하우스 오브 마티스
이 섹션은 마티스의 대표작인 '붉은 방'이 걸려 있는 포토존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붉은색 벽지와 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빛 들판의 대비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야수파란 무엇인가?'의 모범 답안이란 생각을 한다. 마티스를 처음 공부했을 때,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이 '붉은 방'에 대한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았던 것은 색채의 화려함은 물론, 방에 놓인 가구의 형태를 생략하고 무늬로만 남긴 마티스의 과감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티스의 장식적인 표현 방법은 출판 업계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책 표지 디자인은 물론 시의 삽화, 잡지 디자인 등에도 참여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가 출판 업계에서 활약한 작품들을 몇 점 볼 수 있었다. 위 사진 속 '아폴리네르'는 마티스가 컷아웃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한 책 표지이다. 어찌 보면 투박해 보이고, 어린아이가 잘라낸 것 마냥 정교해 보이지도 않지만 마티스 특유의 율동감이 느껴진다. (오른쪽 글씨는 마티스의 실제 글씨체이다. 어쩜 본인의 글씨체도 저렇게 율동감 있게 둥글둥글 귀여울까..?)
마티스의 드로잉이다. 마티스의 드로잉은 '한 선 그리기로 표현했나?'싶을 정도로 단순한 선으로 형태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참 신기하다. 오른쪽 여성의 뒷모습을 그린 선을 보면서, 몇 번의 획으로 그림을 그렸을까를 탐구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필요한 선만을 남겨 두기 위해, 불필요한 선을 생략해 가는 과정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그림을 얼마나 많이 그려야 이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이 '힐링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감성 인테리어 무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Section 2. 재즈
이 전시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이다. 그가 만든 아티스트북 형식의 작품집 '재즈'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음악 재즈가 청각적 리듬감을 선물하는 예술이라면, 마티스의 재즈는 시각적 리듬감을 선사하는 예술이다.
생생하고 강렬한 색채의 종이를 오려 만든 이 작품들은 마티스가 아픈 와중에 만들어 낸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흥에 넘치고 재기 발랄하다. 색의 조화와 대비는 시각적인 리듬감을 불러일으키고, 자른 조각의 크고 작음, 화면 위에 배치한 형태들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 위치한 작품들 중에선 우측에 걸린 작품 '이카루스'에 특히 눈이 갔다. 작품 설명은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이카루스는 창공에 날갯짓하는 인물과 심장을 연상시키는 빨간 점, 붓으로 거칠게 그려진 하늘과 그리고 깃털처럼 생긴 노란색 종이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아버지 디아달로스가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았던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 오른 이카루스는 날개를 접착한 밀랍이 뜨거운 태양빛에 녹아내려 결국 땅으로 추락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단순한 구조의 그림에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마티스는 하늘을 연상시키는 푸른색의 바탕 위에 이카루스를 오려 넣고 빨간색으로 심장을 표현했습니다. 노란색의 별무늬는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날개 깃털로 보입니다. 색채심리학에서는 짙은 파랑은 강인하고 씩씩한 젊음을 상징하고 빨간색은 열정, 노랑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마티스가 처했던 당시 상황과 함께 이 작품을 살펴보면 이카루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공군 비행사를 의미합니다. 전쟁의 영향이 마티스의 작품에 묻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설명에 갑자기 공군 비행사가 등장해서 새삼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작품이 공군 비행사를 추모하는 의미보단 마티스 본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생각을 했다. 비록 병들고 나이가 들어,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는 마티스. 작품 설명에서 흩날리는 날개 깃털로 표현된 노란색 별무늬는 오히려 그의 도전을 빛내주는 후광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카루스처럼 자신이 죽게 될 것이란 걸 알면서도 넘치는 예술의 혼을 불태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Section 3. 마티스와 사랑의 시
섹션 3는 마티스와 사랑의 시이다. 이곳에서는 마티스가 그린 시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람객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전시 도록에 체험을 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는데, 데스크에 놓인 도장을 순서대로 찍으면 마티스의 작품이 완성되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체험은 바로 마티스의 '컷-아웃'을 직접 따라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전시 도록에 있는 색종이 페이지를 활용하면 된다. 데스크 위에 놓인 가위를 활용하여 원하는 모양으로 컷팅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전시장 한 쪽 벽면에 직접 부착할 수 있다. (도록에 붙여서 가져가도 됨.) 개성 넘치는 관람객들의 작품을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만, 체험 공간이 다소 비좁고 지저분한 건 관리가 필요해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토존이 있었다. 나도 수줍게 찍어 보았다.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이란 이름의 이 작품은 실제론 가로 9m, 세로 3m의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한다고 한다. 다채로운 꽃무늬가 장식이 되어 인물이 환해보인다. 다만 위에서 내리 쬐는 조명 탓에 잘못 서면 무섭게 나올 수 있으니 조명을 잘 찾아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Section 4. 메종 마티스
'메종 마티스'는 앙리 마티스의 4대손 장 마튜 마티스가 파리에 설립한 라이프 스타일 부티크이다. 이번 전시가 메종 마티스와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거라 일부 공간을 메종 마티스에게 빌려준 것 같다.
이곳에선 '메종 마티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강렬한 색채들이 여름하고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티스의 작품을 '나른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감성 인테리어'에 활용하고 있는데 정작 마티스의 후손들은 '강렬함, 생동감을 추구하는 톡톡 튀는 인테리어'로 활용하고 있어서 참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른쪽에 놓인 초록색 접시가 참 귀엽고 소장하고 싶었다.)
한 켠에선, 마티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 공간이 있었다. 마티스의 생동감과 율동감, 리듬감이 미디어 아트와 접목되면 눈과 귀가 더욱 즐겁겠다고 생각하며 입장했는데, 너....무 잔잔했다. 정말 정말 대 실망!!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티스의 작품으로 이것 밖에 못하는 게 실화인가요..?
Section 5. 로사리오 성당
이곳에서는 마티스가 말년에 로사리오 성당 건축에 관여하게 되면서 성당 내외부에 남긴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여기에선 그가 디자인한 예배당이 포토존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성당 내부의 패널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맞은 편에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재현되어 있었는데, '이게 뭐지?' 싶었다.
검색을 통해 찾아 본 실제 로사리오 성당 내부 모습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가 싸구려로 소개되다니.. 아쉬웠다. 그래도 전시가 아니었음 로사리오 성당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마티스의 원화 포스터들이 쭈욱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은 마티스의 작품을 오마주한 여러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여러 작가들 중, 한국 작가인 김민경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원한다면 직접 구매도 할 수 있었지만 가격이 250만원이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기념품 샵에서나 사야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느 기념품샵과 다를 바 없이 마그넷이랑 엽서, 키링, 수첩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패브릭 포스터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음.) 우리 집에도 마티스 작품을 하나 걸어둘까? 했지만 마땅히 걸 곳이 없어서 패스했다. 그럼 발매트라도 바꿔볼까? 했는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서 포기했다. 여권 지갑이 귀여워서 구매할까? 했지만 얼마 전에 남편과 커플 여권 지갑을 맞췄기 때문에 살 수 없었다. 키링을 구매할까? 했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두고 왔다. 결국 빈 손으로 돌아왔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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