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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들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약 2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잇는 영국 최고의 갤러리이다. 이곳에는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반드시 보고 와야 할 작품들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1.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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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 작품은 마치 확대경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속 아르놀피니 부부가 입고 있는 의상의 질감과 촉감이 그대로 느껴지며, 반려동물의 털, 뒤 편에 걸려 있는 볼록 거울 장식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그린 것이 없다. 특히, 거울 테두리에는 예수의 수난을 나타내는 '십자가의 길'이 10개의 원형 부조로 그려져 있는데 작품의 크기가 약 80X60cm라는 점을 미뤄볼 때, 얀 반 에이크가 섬세한 묘사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소 한스 홀바인 <대사들>

대사들
대사들 (사진 출처: FaReiBoe, Wikimedia Commons)

그림 속 두 인물은 프랑스 외교관 장 드 당트빌과 그의 친구이자 프랑스 주교, 조르주 드 셀브이다. 두 인물은 가운데 2단 탁자를 둔 채, 양 옆으로 떨어져 서 있다. 탁자에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놓여 있는데, 작가는 이 오브제들을 개별적인 의미를 가진 상징물로 사용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는,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자신의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과 갈등을 겪다가 종교개혁을 단행해 성공회라는 새로운 종교를 설립한 해이다. 이에 프랑스 국왕은 외교관과 주교를 파견해 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했다. 

소 한스 홀바인 역시 구교와 신교의 화합을 기대하며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탁자의 상단에는 지구본과 나침반, 휴대용 해시계 등 당시 인류가 이룩한 과학의 산물들이 놓여 있다. 이는 중세 시대가 끝나고 이성과 과학으로 대표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쪽 선반에는 성가집, 류트(현악기), 피리와 같은 악기가 놓여 있다. 이는 모두 조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류트의 줄이 일부 끊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종교개혁으로 인한 영국과 로마 교황청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한편, 작품의 바닥 면에는 왜상 기법으로 표현된 해골이 그려져 있다. 화가는 해골을 통해 과학의 발전이나 종교 갈등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지 일깨우고 있으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왼쪽 상단에 커튼으로 가려진 예수상이 반쯤 드러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잊으면 안 된다는 한스 홀바인의 깊은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3.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 식사>

엠마오의_저녁_식사
엠마오의 저녁 식사

이 작품은 루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던 글로바(우측 인물)와 루가(초록 옷)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미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은 저녁 식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오른손의 상흔을 보고 예수를 알아차리게 된다. 글로바는 깜짝 놀라 두 팔을 벌리고 있으며 루가 역시 너무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서려고 한다. 서 있는 사람은 여인숙의 주인인데, 제자들과 달리 무덤덤한 표정이다. 이 인물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4. 안토니 반 다이크 <찰스 1세의 기마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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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의 기마 초상(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그림 속 인물은 유럽 역사 최초로 백성에 의해 목이 잘린 왕 찰스 1세이다. 그는 왕권신수설을 무리하게 주장하며 시대의 변화와 민심을 읽지 못했다. 그 결과 1000명이 넘는 백성들 앞에서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크기 367X292cm로 굉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안토니 반 다이크는 그의 깡마른 외모를 귀족적이며 교양 넘치는 당당한 군주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위엄 있게 그려냈다. 특히나 사나운 말 위에 늠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왕을 더욱 높고 고귀하며 용맹한 인물로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왕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과장되게 그린 말의 근육 때문에 되려 찰스 1세가 더욱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5. 렘브란트 반 레인 <34세의 자화상>, <63세의 자화상>

34세
34세의 자화상
63세
63세의 자화상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34세의 그는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성공한 예술가가 된 그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장착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말년에는 고독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그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다. <63세의 자화상>은 젊은 날에 비해 한껏 초라해진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그려낸 그림이다. 인생 자체가 빛과 어둠이었던 렘브란트의 두 자화상을 비교하며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6. 폴 들라로슈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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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그레이의 처형 (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어두컴컴한 감옥,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곧 처형을 앞두고 있다. 이 소녀는 바로 제인 그레이이다. 고작 9일 동안 왕위에 앉아있던 영국의 여왕이다. 성공회의 신자였던 그녀는 구교(가톨릭)와 신교(성공회) 간 종교 갈등과 권력 다툼 때문에 떠밀리듯 여왕이 되었다가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폐위되고 만다. 이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혀버렸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16살이었다. 새롭게 여왕이 된 메리는 제인 그레이를 안타깝게 여겨 개종을 한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으나,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뜻을 굽히지 않았다. 

폴 들라로슈는 제인 그레이가 처형당하기 직전의 비극적인 순간을 그렸다. 눈을 가린 그녀는 단두대를 찾지 못해 당황한 듯 보이며, 이를 보다 못한 가톨릭 신부가 그녀를 부축해 머리를 둬야 할 곳을 알려주고 있다. 그림 왼쪽에는 제인의 보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넋을 잃었고, 또 다른 시녀는 뒤돌아서서 슬픔을 삼키고 있다. 오른쪽의 사형수 역시 연민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다. 들라로슈는 어두운 감옥에서 홀로 빛나는 제인의 흰 피부와 드레스를 강조하며 이 소녀에 대한 자신의 연민을 드러냈다.

 

7.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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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테메레르의 항해 (사진 출처: Sailko, Wikimedia Commons)

윌리엄 터너는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국 국민 화가이다. (영국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브리튼이 해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상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 '터너상'이라고 부를 정도.) 이 작품은 윌리엄 터너가 '자신의 보물'이라고 칭할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작품이다. 영국의 20파운드 지폐에도 이 그림이 새겨져있다고 한다. 

테메레르호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군이 나폴레옹과 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파할 때 큰 공을 세운 전함이다. 이 위대한 승리로 영국은 세계의 바다를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증기선이 등장하게 되었고, 영국인의 자부심이었던 테메레르호는 해체되었다.

위 작품은 작은 증기선이 영광의 테메레르호를 이끌고 항구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연기를 내뿜는 증기선의 또렷하고 단단한 모습과 달리 테메레르의 창백하고 흐릿한 색감은 왠지 모르게 공허해 보인다. 일몰을 앞둔 태양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테메레르호를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해가 지면 반드시 해가 뜨는 법.. 화가는 사라져 가는 영광과 부상하는 기술 문명을 캔버스에 함께 담음으로써 과거에 대한 애잔함과 경건함, 다가올 미래에 대한 찬란한 희망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